 지리산 어린 시절로 가자! 응!
전쟁이 끝나고 어려웠던 시절이었나보다. 남쪽의 조그마한 읍 다소 변두리 동네에 위 아래 집이 그저 그렇게 어렵게 살고 있었다.
애들은 좁은 골목 (길어서 붙여진 이름 진 고샅)에서 주먹만한 고무공 차기도 하고 막대기에 굴렁쇠를 끼워 달리기도 했다. 공이 금새 바람이 빠져 아쉽기도 하였고 더 큰 공이나 새공을 갖고 싶어 자전거 바퀴처럼 큰 굴렁쇠를 갖고 싶어 애타기도 하였다. 잠자리를 따라 가다가 발을 헛 딛어 개울에 빠지기도 하며 자랐다. 조그만 막대기 끝에 철사줄을 동그랗게 붙여 이리저리 실로 망을 만들고 동네 집 구석 구석의 거미줄을 붙여 잠자리채를 만들었지만 잠자리 또한 그렇게 쉽게 잡혀 주지는 않았다. 고추잠자리가 많았지만 훨씬 크고 멋있는 왕잠자리라도 잡는 날이면 다리에 실을 묶어 날아가는 뒤를 따라 다니며 마냥 즐거워 했다.
개천에 새로 난 다리에서 서로 뛰어 내리기도 하고 다소 겁이나서 뛰어 내리지 못하기도 하였다. 골목 앞산 집마당 개천 중학교 논과 밭 방죽 어느곳이나 마을의 공동 놀이터가 아닌 곳이 없었다. 이름이 생각나지 않지만 전봇대나 벽에 손에 손을 잇고 몸이 닿으면 먼저 출발한 애가 지는 게임, 돌아가면서 나갔다 들어오기도 하는 게임도 몇가지는 되었다. 아마도 지금의 스타크래프트 게임 이었던 것 같았다.
여자 애들처럼 삔치기나 실로 모양 바꾸는 것도 아주 재밌는 게임이었는데 어릴 땐 남녀 구분이 없었나 보다. 땅에 금을 그어놓고 이리저리 뛰는 게임, 오자미라해서 지금의 피구 같은 게임 여럿이 줄넘기 하던 것은 여자 애들이 했는데 우리들이 해도 아주 재미있었다. 못으로 하는 못치기도 하고 구슬치기도 하였다. 가까운 구멍에 당연히 들어갈 줄 알았는 데 못 들어 갈 때의 섭섭함에 한숨을 내쉬기도 하였다. 그냥 소주병 같은 어정쩡한 초록색이나 단색의 구슬보단 빨간색 노랑색이 섞인 구슬이나 사기 구슬이 더 좋았고 구슬을 모으는 것이 가치였나 보다. 방에 돌아와 딱지나 구슬 수를 세며 사적 재산에 눈을 떴다.
고운 크레용을 팽이에 색칠해 대견해 하며 팽이치기를 하였다. 막대기 끝에 못쓰는 천을 고무줄로 묶어 팽이채를 만들었는 데 금방 닳아지는 바람에 잘 닳지 않는 구두 끈이나 가죽 끈이라도 만들때에는 너무 행복했다. 종이를 접어 만든 짱개로 서로 뒤집기 금밖으로 나가게 하기 해서 따 먹기도 하고 유달리 짱개를 잘 치는 동무들을 부러워 했다. 짱개도 시험지나 모조지보다는 두꺼운 종이로 만들면 뒤집혀지지도 않고 밀리지도 않아 그야말로 쨩이었다.서로 딱지를 뒤집으며 군대 계급을 익혔고 높은 계급이 낮은 계급을 따먹는 계급을 배웠고 대장이 일등병에 지는 예외 룰에서 빛나는 일등병 날마다 깨져도 가장 높은 것을 이길 수 있는 생존의 지혜를 배웠다. 엽전을 넣어 군청 쓰레기 통에 가서 구한 인찰지로 재기를 만들어 찼는데 두발로 번갈아 가며 차거나 땅에 닫지 않고 차는 묘기가 애들에겐 통했다.
여섯살 일곱살이 되자 세 친구간의 권력이 미묘하게 정해졌다. 나는 희남이를 해봤고 희남이는 용갑이를 해봤고 용갑이는 나를 해봤다. 상대를 찍소리 못하게 하는 사이를 해봤다라고 했지. 지금은 직장상사나 돈이 나를 해보고 있ㄴ느지도 모른다, 누가 나를 해본다는 것은 엄청 괴로운 일인 것 같다. 그 때나 지금이나. ㅎㅎ.
동전으로 벽치기를 해 이미 땅에 있는 동전에 가까이 가거나 손으로 한 뼘 되면 따먹거나 반달모양으로 금을 그어 직선 가까이에 구멍을 내어 일단 금 안으로 들어가고 그 중에선 구멍에 가까이 가면 따버리는 게임도 있었다. 우리는 땅콩이라 불렀는데 자치기라고 불리는 놀이 역시 재미가 대단했다. 길게 땅에 구멍을 내어 단계별로 막대기 두개로 노는데 골프를 서양 자치기라 하는 걸 보면 조금은 유사성이 있나보다. 일번은 구멍을 가로 질러 막대기를 얹고 그 막대기 아래 다른 막대기를 밀어 넣어 위 막대기를 멀리 보내고 날아간 곳에서 상대방이 내 막대기를 맟추거나 막대기 한 뼘 가까이에 보내면 공수가 바뀐다. 내가 계속 이기면 다음 단계로 들어가는데 한손으로 막대기 끝을 잡고 한 손으로 다른 막대기로 그 막대기 끝을 돌려 공중에서 떨어지는 막대기를 쳐 보내고 마지막엔 구멍 앞에 돌을 놓아 막대기를 얹어 놓고 다른 막대기로 돌려 쳐 보냈는 데 특히 이를 땅콩이라 했다.
삽을 타고 노는 지금은 퐁퐁이라고 하느 것이나 돌 다섯개로 손놀림으로 하는 공기 놀이만으로도 하루를 보냈다. 생각해보니 무지무지한 놀이로 긴긴 세월을 즐겼었나보다. 공부는 언제했는지 기억이 없다. 눈만뜨면 놀고 도 놀았나보다. 히히. 탄피로 화약 총을 만들어 설날에 땅땅 총을 쏘고 보름에는 깡통에 구멍을 뚫고 쇠줄을 달아 불쏘시개를 넣어 빙빙 돌렸다. 탱자나무 가지 사이를 잘라 고무줄을 매달고 가죽을 대어 새총을 만들었는데 실제로 새를 잡지는 못했던 것 같다. 오징어 연을 만들고 고리를 엄청 길게 하고 실타래를 돌리는 물레를 양쪽에 더 발전하면 네 쪽 여섯쪽도 있었고 연을 멀리 멀리 날렸는데 날리기도 전에 은단풍 나무에 걸리기도 하였다. 대나무를 쪼개 연탄불에 굽혀 스케이트를 만들고 더 잘 되면 형들이 나무 썰매에 굵은 철사 줄을 못으로 박어 고샅위 눈길을 미끄러지기도 했다. 아주 잘 하지는 못했지만 노는 것은 디게 좋아했나보다.
기억이 싹트기 시작한 네살 봄 때 개나리 꽃 망울이 머물러있는 그 신비스런 노람을 보고 넘넘 새로운 세계를 보는 듯 했고 가까이 있는 중학교에서 말밥풀을 뜯다가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를 피하기 위해 프라타나스 나무 밑에 들어갔다가 물이 엄청 쏟아져 비를 흠뻑 맞고 갠뒤 저 멀리 비료공장에 뜨는 무지개의 신비로움에 먼가 가슴 뛰는 느낌을 가졌다. 초가집 에서 쏟아지는 낙숫물이 바닥에 튀기며 떠오르는 물방울의 파편 또한 아름다움이었고 물이 움직일 때마다 사금이 모래와 물의 흐름에 반짝거리는 것 모두 우리의 가슴 뛰는 놀이였다. 비온 뒤에 앞산에 흘러다니는 엷은 구름을 보며 저 산뒤에는 먼가 새롭고 알 수 없는 세상이 있을 것 같았다. 비만 오면 골목에 흙과 모래를 막고 또 그 아래를 막고 물줄기에 모래 둑이 무너지면 다시 막고 비를 흠뻑 맞는 것 역시 큰 즐거움이었다. 8살때부터 짧은 다리로 자전거를 배우기 위해 안장에 오르지 못한 채로 안장 밑으로 다리를끼워 조금씩 자전거가 내 힘만으로 움직이는 스릴을 배웠고 개천에 나가 소쿠리로 송사리 미꾸라지 잡고 어쩌다 메기라도 잡으면 정말로 신이 났고 물위를 가르는 택시라고 불렀는데 빨간 점이 있는 물방개 그리고 물위를 톡톡 튀어가는 소금쟁이의 신기함 붕어들이 약간 시커먼 그림자를 내며 달려갈 때의 뭉클함 개천은 아주 색다른 놀이터였다.
논을 가로질러가면 몇 개의 방죽들이 있었고 적은 대나무 가지에 실을 달아 밥풀때기로 시작한 피리 낚시. 우리는 세모방죽 네모 방죽이라 불렀는 데 산 밑에 한 방죽은 물이 너무너무 깨끗하고 찬 지하수가 나와선지 아주 시원하여 지금도 일년에 한번은 그 방죽에 가서 고기도 잡고 헤엄치는 꿈을 꾼다.
아직도 일년에 몇번씩 꾸는 어린 시절의 꿈이 있다. 우리 동네에서 제일 큰 집 아마도 옛날 목사 관서인듯이 여겨지는 큰 기와집 돌로 된 계단을 올라가야 나오는 마루를 가진 용갑이가 살았던 집이나 대나무 밭으로 둘러싸이고 온갖 아름다운 꽃이 활짝 피어있는 아버님 친구인 천도씨의 집에서 꽃과 물고기와 함께 노는 꿈 한마디도 건네지 못하고 가슴만 태운 건너 마을의 얌전한 계집애를 밭길에서 만나 또 비켜가는 아쉬운 꿈을...
여름이 되면 큰 저수지 한수동이라 했지 날이면 날마다 몸을 태우며 개 헤엄을 치고 일년에 한 두 명씩은 죽었지만 동네 남자 들의 놀이터였다. 이월에는 앞산에 올라 칡을 캐고 삐삐를 따 먹고 오월엔 아카시아 꽃을 찾아 누볐고 아직 안 익은 보리를 구워 손으로 비벼 후후 불어 껍질을 날리고 그 푸르고 싱싱한 보리 속살 잘 구어진 그맛 아! 양파를 벗겨 사이사이의 투명막을 손톱으로 조심히 벗겨 먹거나 마늘 대를 어렵게 벗기고 가을엔 수수를 삶아 한알 한알씩 까서 씹고 밭 두렁 흙이 터진 곳에 손을 집어내어 뿌듯한 감각을 느끼면서 고구마를 캐어 냇물에 씻어 들었고 논 사이로 메뚜기를 잡으러 다녔지. 메뚜기보다 좀 더 큰 것을 잡으면 뿌듯했고 방아개비 다리를 잡고 방아를 찧고 사마귀를 무서워했다.
그 몇 년 그러니까 중학교 입시를 위해 밤공부를 하던 육학년 이전의 오학년 나이로 말하면 열두살 그러니까 다섯부터 열 두살까지의 걱정 근심없고 마냥 즐겁고 호기심 가득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셀 수 없는 놀이와 먹거리와 순박한 사람들이 있었던 어린 시절. 해질녁에 밭에서 돌아오신 할머니의 소쿠리에서 노란 참외라도 발견할때의 그 기쁨 유달리 노랠 좋아하시는 아버님이 들려 주셨던 아저씨 아저씨 동화 아저씨 재미있는 이야기 들려 주세요 오오냐 그러마 이야기하마 옛날에 간날에 어느 산골에........ 노래 덕준아 너도 한번 노래 불러봐라 하시면 앵두나무 그늘가에 동네처녀 바람났네 물동이 호미자루 나도 몰래 내던지고 금순이도 00이도 말만들어 서울로 밤보짐을 쌌다네 하고 부르면 그렇게 좋아하셨던 아버님도 떠오른다. 지금 생각하니 왜 그리 성숙한 사회성 짙은 노래를 불렀는지. 순수하고 열정적이셨던 아버님께서 쪼끄만 아들이 세속화되는 것에 섭섭해하진느 않으셨는지 모르겠고. 암튼 생각해보니 나에게도 그런 너무나 행복한 시절이 있었네.
그 뒤로는 지금까지 40년 가까이 계산과 의무와 탐욕의 생활 경쟁의 삶 사유재산의 삶이 펼쳐지고 있는 것 같다. 참으로 오랜만에 생각나는 어린 시절. 구슬같이 소중했던 나날들.
가태야!
그래 이번에 그만 뒀다지?
섭삽하겠지?
잊어!
잊으라구!
응...
그리고 우리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루자.
응.
그래 가는거야!
응?
알았지!
*지리산 심마니의 무궁한 발전을!
돈 동무가 이히!
|
글 남 기 기
